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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일곱 코, 런던 벽에 남은 감시 사회 반대 조각

2026년 10월 19일 오전 04:140

소호의 일곱 코는 런던의 건물 벽에 붙은 코 모양 조각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CCTV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된 거리 미술이다. 이브닝 스탠더드에 따르면 작가 릭 버클리는 1997년 자신의 코를 본뜬 석고 조각 35개를 런던 곳곳에 붙였다. 벽을 크게 덮는 그림과 달리, 주변 표면에 섞여 쉽게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든 작업이었다.

이 조각을 살펴볼 때 중요한 것은 코의 모양만이 아니다. 벽과 얼마나 비슷한 색인지, 건축물의 일부처럼 보이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주변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는지가 함께 볼 지점이다. 거리 미술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이 작업은 작품의 크기나 선명함 외에도 눈여겨볼 요소가 있음을 보여 준다.

소호의 일곱 코는 CCTV 확산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버클리가 문제 삼은 것은 1990년대에 늘어나는 감시 카메라였다. 이브닝 스탠더드는 당시 영국 내무부가 범죄 예방 예산의 약 78퍼센트를 CCTV 기술에 쓰고 있었다고 전한다. 조각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공공장소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수단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 코는 그 논쟁을 글이나 표어 대신 몸의 일부로 거리에서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버클리는 2012년 이브닝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 수를 둘러싼 논쟁과 자유 침해에 대한 반감을 이야기했다. 작가가 관심을 두었던 상황주의자들의 예술과 행동도 작업의 계기였다. 허가 없이 벌이는 일시적인 행동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은 이 조각을 단순한 도시 장식보다 넓은 거리 미술의 맥락에서 보게 한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작품을 찾는 행위에도 다른 의미가 생긴다. 조각을 발견했다는 성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리를 걷는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지나치는지 생각할 수 있다. 작은 사물이 시선을 붙잡는 순간은 감시라는 큰 주제를 일상의 눈높이로 가져오는 접점이 된다. 이는 작업을 읽는 하나의 관점이다.

벽과 같은 색은 조각을 건축물에 섞이게 했다

코 조각은 처음부터 눈에 잘 띄는 기념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버클리는 설치한 벽과 색을 맞췄고, 당시에는 프로젝트를 알리지 않았다. 당국에 발각되지 않고 작품을 붙일 수 있는지, 나아가 돌출된 코가 건물 자체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 했다.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브리튼 바깥에도 조각이 등장했다.

이브닝 스탠더드가 작가의 정체를 밝힌 것은 2011년이었다. 그전에는 누가 코를 붙였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설치된 작품 중 상당수는 일찍 사라졌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작업이 거리에서 계속 남는다는 보장이 없었다는 점이다. 사라진 조각마다 같은 이유를 붙이거나 제거한 사람의 의도를 짐작할 필요는 없다.

방문할 때는 코를 주변 벽에서 떼어 놓고 보지 않는 편이 좋다. 색이 이어지는 부분과 표면에서 튀어나온 윤곽을 함께 관찰하면 위장과 돌출이라는 두 요소를 한 번에 읽을 수 있다.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벽화와는 다른 속도로, 건물의 작은 부분을 살피는 경험에 가깝다.

이름의 일곱과 실제로 남은 개수는 다를 수 있다

현재 찾아볼 수 있는 코가 정확히 일곱 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브닝 스탠더드는 일곱 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전해지는 이야기로 소개한다. 또한 마지막 일곱 개로 불리는 조각 가운데 하나는 버클리의 작품이 아니라고 전한다. 익숙한 이름이 모든 조각의 수와 제작자를 확정해 주지는 않는다.

보도에서 소호 안의 위치로 거론된 곳은 다블레이 스트리트와 베이트먼 스트리트 등이다. 소호에는 다섯 개가 있다고 전해지며, 소호 밖에는 코번트가든의 엔델 스트리트와 애드미럴티 아치가 언급된다. 따라서 이름만 보고 모든 조각이 소호 경계 안에 모여 있다고 예상하면 실제 보행 범위와 차이가 생긴다.

거리 미술을 보러 간다면 일곱 개를 모두 모으는 일보다 각 장소에서 발견하는 형태와 주변 환경에 시간을 배분하는 편이 유용하다. 작품의 현장 존재 여부와 이름이 만들어 내는 기대를 분리하면, 찾지 못한 조각 때문에 산책 전체를 실패로 볼 이유도 줄어든다. 도시의 작은 개입을 읽는 과정 자체가 방문의 목적이 될 수 있다.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작품을 둘러싼 전설이다

일곱 코를 전부 찾으면 부자가 된다는 말은 조각을 둘러싼 전설이다. 건축가가 자신의 코 모양을 건물의 서명처럼 남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설화는 작은 조각에 기억하기 쉬운 이야기를 붙인다. 다만 버클리가 밝힌 CCTV 반대라는 출발점과 같은 종류의 설명은 아니다.

트래펄가 광장 근처 코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코를 본떠 기병들이 만지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코가 손상될 경우를 대비한 대체품이라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브닝 스탠더드는 이런 유래담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방문자는 전설을 즐기면서도 작품의 제작 배경을 별도로 기억할 수 있다.

거리 미술 문화에서 이 사례가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가 의도한 의미와 사람들이 덧붙인 이야기가 함께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사진으로 코의 형태만 기록하는 것과, 감시 반대의 맥락이나 주변 건물을 함께 기록하는 것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어느 부분이 관찰이고 어느 부분이 전해지는 이야기인지 드러내면 기록도 더 구체적이 된다.

방문할 때는 코와 벽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자

현장에서는 조각의 모양, 벽과의 색 관계, 건물 표면에서 돌출되는 방식을 함께 보는 것이 핵심이다. 작품을 발견했다면 주변 벽이 보이는 사진과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사진을 나누어 남기는 방법도 있다. 관찰하고 촬영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조각을 만지거나 가져갈 이유는 없다.

버클리의 작업은 허가 없는 설치에서 출발했다. 그 배경을 설명하는 일은 공공장소의 표면을 누가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함께 남겨 둔다. 예술적 의도와 건물에 대한 권한은 각각 검토할 문제다. 관람자는 그 논쟁을 한쪽으로 결론 내리지 않고도 작품의 방식과 도시 속 위치를 살펴볼 수 있다.

소호의 코를 보는 산책은 결국 큰 작품만 찾던 시선을 작은 돌출부와 벽의 색으로 옮기는 경험이다. 정확한 개수에 대한 기대를 앞세우기보다, 발견한 조각이 건물과 맺는 관계를 차분히 살펴보면 된다. 감시에 맞서 시작된 작업은 그렇게 거리에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출처: Evening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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