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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산 로렌초, 프레스코 대신 벽화가 있는 동네

2026년 8월 26일 오전 01:380

로마 산 로렌초는 스트리트 아트가 장식이 아니라 동네 역사의 연장인 곳이다. 가디언은 2026년 7월 29일 기사에서 "로마 도심이 프레스코로 규정된다면 산 로렌초는 스트리트 아트로 규정된다"고 썼다.

테르미니역에서 콜로세움 반대 방향으로 20분만 걸으면 닿는 거리인데도, 관광객 대부분은 이 동네의 존재를 모른다.

왜 지금 이 동네가 이야기되는가

로마 도심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붐비기 때문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2025년 바티칸 희년의 영향으로 로마는 사상 최다인 2290만 명의 숙박 방문객을 받았다. 이는 이 도시 거주 인구의 거의 열 배다. 현지에서는 2026년이 그 기록을 다시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객이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베네치아 광장으로 몰리는 동안 반대 방향에는 거의 아무도 가지 않는다. 산 로렌초는 그 반대 방향에 있다.

저항의 역사가 벽에 남은 동네

산 로렌초는 19세기 말 노동자 계급을 위해 지어졌다. 무솔리니가 권력을 잡던 시기, 이곳 주민들과 반파시스트 무장 조직 아르디티 델 포폴로는 저항에 나섰다.

가디언에 따르면 기록이 많지 않은 1922년 산 로렌초 전투에서 아르디티 델 포폴로는 파시스트 행동대의 진입을 총격으로 막아냈다. 다섯 달 뒤 로마 진군 때는 검은 셔츠단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충돌로 13명이 숨졌지만 파시스트 세력은 끝내 이 구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산 로렌초는 좌파 정치색을 뜻하는 "붉은 구역"으로 불리게 됐다.

2차 세계대전 말에는 연합군 폭격으로 이 일대가 크게 파괴됐고 주민 약 1500명이 숨졌다. 1943년 폭격으로 무너진 성 라우렌시오 성당은 잔해에서 나온 자재로 파사드를 다시 세웠다.

이 역사를 알고 나면 벽에 그려진 것들이 달리 보인다.

반드시 봐야 할 두 작업

가디언이 이름을 들어 소개한 작업은 두 개다.

첫째는 마리나 비아지니와 엘리사 카라촐로의 "여성살해 반대 벽화"(Murale contro il Femminicidio, 2012~13년)다. 그림 속 인물 107명은 각각 전년도 여성살해 희생자 한 명을 가리킨다. 숫자를 그림으로 옮긴 작업이며, 세어 보라고 만들어진 그림이다.

둘째는 로마 태생 스트리트 아티스트 알리체 파스퀴니가 비아 데이 사벨리를 따라 한 블록 길이로 그린 "웰컴 투 산 로렌초"다.

이 밖에도 동네에는 흔한 낙서가 많다. 가디언은 스트리트 아트 투어가 자주 열린다고 전했다.

벽 바깥의 예술

산 로렌초의 창작 활동은 거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1970년대에 옛 파스타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바꾼 폰다치오네 파스티피초 체레레가 이 지역 현대미술의 중심이며, 전시가 자주 열린다. 콜레티보 노마데와 몬티8 같은 독립 갤러리와 창작 공간도 함께 있다.

지역의 성격도 여전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인근 라 사피엔차 대학 학생들이 예술가, 오래 산 주민들과 섞여 지내고, 해 질 무렵이면 임마콜라타 광장이 사실상 동네의 거실이 된다. 라 사피엔차는 1303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다.

관광이 밀려오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변화가 시작됐다. 가디언은 이 구역에 자금이 들어왔고 소호 하우스와 소셜 허브 같은 회원제·호텔 체인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네는 도심과 구별되는 성격을 상당 부분 지켰다고 평가했다.

이 균형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트리트 아트로 알려진 동네가 그 때문에 관광지가 되고, 관광지가 되면서 원래의 조건이 사라지는 일은 여러 도시에서 반복됐다. 산 로렌초는 지금 그 곡선의 앞쪽에 있다.

가는 사람에게

산 로렌초를 볼 계획이라면 벽만 보지 말고 벽이 있는 골목을 보는 편이 낫다. 여성살해 반대 벽화는 인물 수가 핵심이므로 전체가 들어오는 거리에서 한 번, 얼굴이 보이는 거리에서 한 번 보는 것이 좋다.

찍은 사진은 위치와 함께 남겨 두면 쓸모가 있다. 월스케이프 지도는 작업을 찍은 지점과 묶어 기록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피드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올라온 최근 기록을 볼 수 있다.

원문 보기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