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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하임 바턴 공원에 그린 미아 메히아 추모 벽화

2026년 9월 28일 오후 11:000

학교 벽화 앞 사진이 새 작업으로 이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바턴 공원에 미아 리아 메히아를 기리는 벽화가 마련됐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2026년 9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벽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카를라 로케는 9월 17일부터 공원 화장실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아는 2025년 3월 열세 살에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작업의 계기는 사진 한 장이었다. 로케는 자신이 바턴 초등학교에 그렸던 벽화 옆에 미아가 서 있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서 봤다. 이후 애너하임 시의회에 가족과 연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추모 벽화를 제안했다. 이미 동네에 있던 작품이 새로운 추모 작업의 접점이 된 셈이다.

벽화는 9월 자살 예방의 달을 계기로 추진됐다. 애너하임 시의원 나탈리 루발카바와 애너하임 커뮤니티 서비스가 지원했다. 로케는 친절과 공감, 사람 사이의 연결을 되새기고 청소년에게 자신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 작품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보라색 꽃과 청록색 바탕에 담은 메시지

벽화에는 미아의 초상과 보라색 양귀비꽃, 나비가 함께 등장한다. 나비 한 마리는 미아의 어깨에 앉아 있다. 밝은 청록색 바탕에는 각자의 존재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뜻의 문구가 보라색으로 적혔다. 그 아래에는 미국에서 전화나 문자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번호 988을 안내했다.

초상과 문구를 함께 보면 작품의 두 가지 역할이 드러난다. 가족에게는 미아를 기억하는 그림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청할 통로를 알리는 공공미술이다. 감상의 대상인 벽면에 연락처를 함께 둬, 메시지를 읽은 사람이 다음 행동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부모 구스타보 메히아와 베로니카 메히아는 딸을 다정하고 영리하며 공감할 줄 아는 아이로 기억했다. 미아는 학교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했고 애너하임의 ERA 체조장에서 운동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체조팀에서 활동하는 꿈도 있었다. 이런 기억은 초상 속 인물을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머니와 친구들도 그림에 손을 보탰다

미아의 가족과 친구들은 직접 벽화를 칠하며 추모에 참여했다. 신문은 금요일 오후 베로니카가 딸의 광대뼈 부분에 색을 더해 얼굴의 깊이감을 만드는 작업을 도왔다고 전했다. 베로니카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미아가 자신의 화장을 해 주던 기억도 나눴다.

토요일 오전에는 친구 15명이 모여 벽화 일부를 칠했다. 몇몇은 미아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를 입고 왔다. 가족과 친구들은 붓을 움직이며 서로를 안아 주고 위로했다. 참여자들의 손길은 완성된 그림 밖에서도 이 작업이 어떤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보여 준다.

오렌지 카운티 여러 곳에 공공 벽화를 그려 온 로케는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고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베로니카 역시 작업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얻었다고 전했다. 다만 그 경험을 모두에게 같은 치유 효과가 있다는 뜻으로 넓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벽화가 전하는 것은 가족이 함께한 구체적인 추모의 과정이다.

바턴 공원의 사우스 애거트 스트리트 쪽 벽면

작품을 찾을 때 기준이 되는 위치는 바턴 공원 화장실 건물의 사우스 애거트 스트리트를 향한 외벽이다. 보도에는 별도의 전시관이나 관람 예약 안내가 없다. 관람 시간을 정하기 전에는 공원 이용 정보를 따로 확인하는 편이 좋다.

벽화를 볼 때는 초상의 표정, 주변의 꽃과 나비, 아래쪽 연락처를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넓은 색면과 가까이서 읽는 문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감상할 지점이다. 추모 공간인 만큼 사진을 찍거나 머무를 때는 다른 이용자와 유가족을 배려해야 한다.

공원 안 일상적인 시설의 외벽을 사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작품은 미술관을 찾아간 사람뿐 아니라 동네를 오가는 사람에게도 기억과 도움의 메시지를 건넨다. 다른 지역의 벽화도 Wallscape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 Los Angeles Times

도움이 필요하다면 한국에서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미국에서는 전화·문자 988로 연락할 수 있다.

원문 보기— Los Angeles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