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뉴스

자다브푸르대 그래피티 공방, 지운 벽에 다시 그림이 올라왔다

2026년 9월 4일 오전 11:010

인도 콜카타 자다브푸르대학교(Jadavpur University)에서 캠퍼스 벽 그래피티를 두고 대학 본부와 학생들이 맞서고 있다. 프리프레스저널(Free Press Journal)에 따르면 2026년 9월 2일 치란지브 바타차리야(Chiranjib Bhattacharya) 총장은 공개서한을 내고, 학생들에게 벽에 글씨를 쓰는 대신 소셜미디어로 의견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본부가 문제가 된 문구를 흰 페인트로 덮은 직후 같은 벽에 새 그래피티가 올라온 뒤에 나온 요청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발단은 대학 밖에서 시작됐다. 프리프레스저널은 서벵골주 수벤두 아디카리(Suvendu Adhikari) 주총리가 자다브푸르대 인문대학 건물의 벽 문구를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그가 지목한 문구에는 무장 투쟁 지도자를 기리는 구호와 카슈미르 독립을 지지하는 구호가 포함돼 있었다.

이후 대학 측이 해당 문구들을 흰 페인트로 덮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벽면에 새로운 그래피티가 나타났다. 인도 시사주간지 더위크(The Week)는 이번에 올라온 문구에 팔레스타인 지지 메시지와 카를 마르크스, 호찌민을 인용한 문장이 포함됐고, 좌파 성향 학생 단체와 우파 성향 학생 단체가 각각 다른 벽면을 사용해 왔다고 보도했다.

총장이 요청한 것

바타차리야 총장의 서한은 금지가 아니라 자제 요청에 가깝다. 그는 자다브푸르대가 오랜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의 전통을 지켜 왔다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캠퍼스가 "깨끗하고 평화로우며 보기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적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지키자는 것이 서한의 요지다.

학생들에게 소셜미디어를 대안으로 제시한 부분이 이번 논쟁의 핵심이다. 대학 본부의 입장에서 소셜미디어는 물리적 흔적을 남기지 않는 표현 수단이다. 반대로 벽에 그리는 쪽에서는 바로 그 물리적 흔적, 즉 특정 장소를 점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의 일부다. 같은 문장이라도 캠퍼스 중앙 벽에 3미터 크기로 적혀 있을 때와 게시물로 올라올 때 작동 방식이 다르다.

지우기와 다시 그리기가 반복되는 구조

자다브푸르대에서 벌어진 일은 스트리트 아트 전반에서 반복되는 형태다. 벽을 지우는 행위는 벽을 비우지 않는다. 흰색으로 덮인 면은 그다음 사람에게 가장 눈에 띄는 빈 캔버스가 된다. 덮은 자국이 남아 있는 벽은 그 자리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보여 준다.

그래서 이런 국면은 대개 두 개의 서로 다른 질문이 겹쳐 있다. 하나는 특정 문구의 내용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벽이라는 공간의 사용 권한을 누가 갖는가라는 질문이다. 자다브푸르대의 경우 주정부와 대학 본부는 첫 번째 질문에서 출발했고, 벽을 다시 칠한 학생들은 두 번째 질문으로 답한 셈이다. 양쪽 모두 상대의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

한국의 벽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 왔나

한국에서도 같은 구조의 갈등은 낯설지 않다. 다만 한국은 대체로 '지정된 면'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지자체가 벽면을 지정해 작가에게 개방하거나, 재개발 예정 구역의 담장을 한시적으로 열어 두는 방식이다. 홍대 앞과 문래동 철공소 골목처럼 오래 유지된 구간은 대부분 이런 합의 위에 만들어졌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하다. 지우고 다시 그리는 소모전을 줄인다. 한계도 분명하다. 지정된 면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은 어디에 그릴지 결정하는 권한이 그리는 쪽에 없다는 뜻이고, 장소 선택이 메시지의 절반인 작업에는 그만큼 제약이 된다. 자다브푸르대의 상황은 그 절충안이 없을 때 어떤 국면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무엇을 지켜볼 것인가

이번 사안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규칙이다. 지정 구역을 두는 방향으로 갈지, 사안마다 판단하는 방식이 이어질지에 따라 캠퍼스 벽의 성격이 달라진다. 대학이 표현의 전통과 관리 책임을 동시에 언급한 이상, 다음 단계는 그 둘 사이에서 구체적인 선을 어디에 긋는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벽과 골목에서 실제로 어떤 작업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월스케이프 지도에서 위치별로 확인할 수 있다. 지정된 벽과 그렇지 않은 벽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논쟁이 왜 반복되는지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출처: Free Press Journal

원문 보기Free Press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