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뉴스
34년간 그래피티에 덮인 마이애미 마린 스타디움, 복원 확정
34년간 그래피티에 덮여 있던 마이애미 마린 스타디움, 복원이 결정됐다
마이애미 유권자들이 2026년 8월 18일 주민투표에서 마린 스타디움(Miami Marine Stadium)의 복원을 승인했다. 공영방송 WLRN에 따르면 68% 이상이 마이애미시가 공연장 운영사 스펙트라(Spectra)와 관리 협약을 맺고 이 경기장을 다시 열도록 하는 안건에 찬성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 가장 넓게 그래피티에 덮여 있던 대형 구조물 하나의 30여 년이 이 투표로 끝을 향하게 됐다.
마린 스타디움은 어떤 건물인가
마린 스타디움은 1963년 마이애미 다운타운 건너편 버지니아 키(Virginia Key)에 문을 연 6,500석 규모의 수상 경기장이다. AP통신에 따르면 개장 당시 미국에서 유일한 모터보트 경주 전용 경기장이었다. 설계자는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온 당시 20대 후반의 건축가 일라리오 칸델라(Hilario Candela)였고, 관중석 위로 길게 뻗은 캔틸레버 콘크리트 지붕은 지금도 20세기 중반 브루탈리즘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경기장은 경주장만은 아니었다. AP는 1967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 〈클램베이크〉가 이곳에서 촬영됐고, 1972년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가 참석한 유세가 열렸다고 전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과 지미 버핏이 물 위에 띄운 무대에서 공연했다. 버핏은 이 장소를 "음악이 노는 작은 성당"이라고 불렀다.
왜 34년 동안 비어 있었나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가 구조물을 손상시킨 뒤 마이애미시가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해 폐쇄했기 때문이다. AP는 "미국 국가 사적지에 등재돼 있음에도 오늘날 철망으로 막혀 있고 그래피티로 덮여 있다"고 이 경기장의 현재를 요약했다. 등재는 2018년에 이뤄졌고, 그 사이 여러 차례의 구조 검토는 건물 자체가 여전히 안전하다는 결론을 냈다.
철거 논의도 있었다. AP에 따르면 2008년 시 당국이 철거를 제안하자 도널드 워스(Donald Worth)가 보존 운동 단체 '리스토어 마이애미 마린 스타디움'을 만들어 반대에 나섰다. 칸델라는 2022년, 버핏은 2023년 세상을 떠났다.
그래피티는 어떻게 되나
복원 계획이 기존 그래피티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폐허가 복원될 때 벽에 쌓인 페인트는 대체로 사라진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훼손의 제거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30년치 기록의 삭제다. Wallscape는 이 논쟁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린 스타디움은 물 건너 섬에 있고 철망으로 막혀 있었다. 접근이 어려운 폐허일수록 벽에 남는 그림은 오래 쌓이고, 사진으로 남는 양은 적다. 지워지기 전에 기록되지 않은 벽은 다시 볼 방법이 없다. Wallscape의 지도와 피드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복원 비용은 누가 내나
AP에 따르면 마이애미 시의원 데미언 파르도(Damian Pardo)는 총 사업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납세자가 부담하는 몫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WLRN은 운영사가 먼저 텐트와 임시 구조물로 '플렉스 파크'를 만들어 수익을 내고, 그 수익으로 경기장 전면 보수를 진행하는 순서라고 전했다.
브레이크워터 호스피탈리티 그룹 공동창업자 에미 게라(Emi Guerra)는 AP에 "여기에는 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이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이 투표가 거리 미술에 갖는 의미
한 도시가 그래피티로 덮인 폐허를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다시 계산했다는 점이 이 결정의 핵심이다. 마이애미의 선택은 철거가 아니라 복원이었고, 세금이 아니라 운영 수익으로 그 비용을 대는 방식이었다. 버려진 콘크리트 구조물을 두고 같은 논쟁을 벌이고 있는 도시들 — 서울의 폐공장 지대를 포함해 — 에 이 표결은 참고 가능한 선례가 된다.
동시에 이 결정은 그래피티가 놓인 자리를 다시 보여준다. 그래피티는 대개 도시가 잊은 건물에 생기고, 도시가 그 건물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 지워진다. 마린 스타디움의 34년치 페인트가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는 앞으로 몇 달 안에 정해질 것이다.